loader

아림고등학교 3학년 만학도반

 

  아림고등학교 3학년 만학도반에 강의를 나갔습니다. ‘미리 가보는 대학’의 한 프로그램으로 17명의 여고생들 앞에 섰습니다.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7,80대의 어머니들입니다. 이 여고생들은 거창군의 성인문해교육으로 시작해 초중학교 학력을 인정받고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했고, 내년이면 꿈에 그리던 대학에 입학하여 여대생이 됩니다.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많았습니다. “왜정 때 태어났는데 여자라고 학교에 보내 주지도 않았어” “글을 읽지 못하니 가게 간판도 제대로 못 읽어 한이 맺혔지” “내 살아온 얘기를 글로 쓰고 싶었어” “평생 자식들 키우고 농사지으며 집안을 일궈왔지만 못 배운 답답한 삶을 바꿔 보고 싶었지”

 

  질문을 바꿔봤습니다. “학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집에 돌아가면 아무 생각도 안 나죠?” “중간고사 때 시험지만 보면 머리가 아프고 아무 기억도 없죠?”하니 “딱 맞구만”하고 모두가 웃으며 맞장구를 칩니다. 그리고 나서 콩나물시루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면 그 순간 물은 바로 밑으로 빠져 버리지만 계속 주다 보면 어느 순간 콩이 싹을 틔우고 통통하게 자라나는걸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어머니들의 공부가 바로 콩나물과 같습니다. 힘내세요. 했더니 뭉클한 모습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네요. 

 

  제주도 용암동굴에 가면 볼 수 있는 종유석이 100년에 1미리 씩 자란다고 합니다. 백 년 동안 쌀 한 톨의 크기보다 작게 자라는 셈입니다. 그래도 멈춘 게 아니고 현재진행형이지요. 어쩌면 인생 최고의 전성기일 어머니들의 공부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왜 공부를 하세요? 하고 물으니, “못 배운 내 한도 좀 풀고, 남에게 좀 베풀고, 우리 사는데 좀 도움이라도 될란가 싶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 대답이 우리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넓은 아파트, 폼 나는 외제차, 해외여행과 골프투어, 부동산, 노후를 위한 연금과 보험 그리고 이런 삶을 고스란히 복제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그런 공부에만 매달려 살지 않았나 반성하게 됩니다.

 

  좋은 목적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적인 통증은 줄어들 것입니다. 공부는 밑바닥을 흔들어 자신을 다시 다지고,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장한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합니다. 내가 이룬 성취는 혼자 잘 나서 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혼자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그 공부를 사회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제주도 종유석처럼 시루 속의 콩나물처럼 조금씩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내년이면 여대생이 될 우리 만학도 어머니들, 까짓거 공부해서 남 줍시다!

 

 

 

 

신승열 (시인, 거창대외래교수)


좋아요
0

훈훈해요
0

슬퍼요
0

화나요
0

후속기사 원해요
0
 

코멘트(Comments)

로그인 하시면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뉴스

최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