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열 (시인, 거창대외래교수)
프랑스의 드골은, 나치독일 점령 당시인 1940년 6월부터 4년 2개월 동안, 침묵하던 프랑스 언론인을 처형했다. 침통한 표정이다. 앞에는 처형대, 눈을 가린 사형수가 늘어섰다.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총성과 함께 고개를 떨군다. 다시 늘어서는 사형수들, 총성, 꺾어지는 고개들. 그들이 바로 프랑스의 언론인이었다.
나치 치하에서 살아남은 프랑스 언론인에 대한 처벌은 무서웠다. 드골은 나치협력 민족반역자를 숙청하면서 가장 먼저 언론인들을 심판대에 올렸다. 처형을 면한 자는 드골에게 항의했다. 저들은 나치에게 협력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언론의 자유’를 들먹이며 반대하였으나 드골이 대답했다. ‘저들의 죄는 침묵이다.’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는 언론인, 불의에 대해 저항하지 않은 언론인에게 드골은 극형을 내렸다.
드골에 의한 프랑스 언론인 숙청은 단순 반민족세력이기에 처벌을 받은 것이 아니라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거듭하며 부도덕한 인간들이 언론을 주도해서는 안된다는 당위일 것이다. 언론인은 도덕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나라 언론이 그 당시 프랑스의 언론과 겹쳐 보인다. 보수와 진보 편가름처럼 보이지만 정작은 수구와 보수의 제로섬게임처럼 보인다. 한쪽은 부패로 한쪽은 분열로 파멸의 지름길을 좇고 있다.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역사, 특히 우리나라의 언론들은 친일, 친미, 친정부 등으로 카멜레온처럼 옷을 갈아입으며 또 다른 특권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거창의 언론도 그 모습이 겹쳐진다. 견제와 감시, 사실과 진실.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는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언론, 검증되지 않은 가짜기사와 오보, 지역정치와 은밀한 결탁, 부정부패한 사건들과의 연관, 나열하기가 부끄럽다.
지난 2020년 중앙의 어느 진보성향 방송사가 방송사 최초로 자사 보도방향을 ‘합리적 진보’로 명시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겠다는 의지였다. 합리적 진보라 함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되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보도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적 가치는 우리가 추구하는 상위개념이며, 정파적 집단은 그 하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
아림신문이 창간 35년 정도 되었다. 그 당시 전국에서 손꼽히던 대표 지역신문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창간을 위해 아림신문에 연수를 오기도 했다. 열 명에 가까운 취재기자와 편집기자들이 있었고 특집 및 기획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고발 기획기사에 수 천 만원의 돈을 들고 와서 그 회차 발행부수를 모두 사겠다며 애원하고 협박하던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그렇게 가치를 지키고 정체성을 이어온 신문이다.
다시 창간의 정신을 되새겨야 할 때다. 작은 지역에서 스무 개가 넘는 지역신문과 인터넷신문이 범람하는 지금, 아림신문이 먼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 되돌아보고 다시 다잡고 분연히 일어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