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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축제와 트롯가수 공연, '흥행'보다 '정체성'이 먼저다

등록일: 2026-02-26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들은 사계절 내내 크고 작은 축제를 열어왔다. 봄의 꽃, 여름의 바다, 가을의 수확, 겨울의 눈과 빛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담아내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라는 현실적 목적 위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람을 녹여낸 '살아있는 콘텐츠'로서 기능해왔다.

경남 거창이 좋은 예다. 청정 자연을 기반으로 산양삼의 주산지로 이름을 알려온 이 고장은, 특산물의 가치를 전파하고 농가 소득을 견인하는 산양삼 축제와, 작품성과 문화적 다양성으로 도시의 품격을 빚어온 거창국제연극제, 그리고 군민의 화합과 활력을 다지는 거창한마당 축제를 지역을 대표하는 행사로 키워왔다. 저마다 분명한 철학과 색깔을 품고 출발한 행사들이다.

그러나 요즘 각 지역 축제의 홍보물을 살펴보면, 행사의 취지나 프로그램 소개보다 '초청 가수 ○○ 출연'이라는 문구가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포스터 한가운데를 채우는 것도 축제의 상징이 아닌 인기 가수의 얼굴인 경우가 적지 않다. 트롯 공연이 어느새 축제 그 자체의 얼굴이 되어버린 것이다.

문제는 비용과 그에 따른 본말전도(本末顚倒)다. 초청 가수 한 명의 출연료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달한다. 그 여파로 지역 특산물 홍보 부스와 체험 프로그램, 청년 예술인의 무대는 조용히 자리를 잃고, 메인 공연의 비중만 해마다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축제 예산은 불어나도 정작 축제다운 내용은 얇아지는 아이러니다.

물론 트롯 공연의 현실적 효과를 외면하기는 어렵다. 중·장년층 관객을 불러 모으고, 흥겨운 무대로 현장 분위기를 단숨에 끌어올리며, 지역 상인에게는 당일 매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안겨준다. 많은 지자체가 이를 '안전한 선택'으로 삼는 데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현실적 배경이 있다.

그럼에도 축제의 본질은 '하루의 흥겨움'에 있지 않다. 산양삼을 알리는 자리라면 그 효능과 재배 과정, 청정 자연이 품은 가치가 무대 중심에 서야 한다. 국제 문화 교류를 표방하는 연극제라면 작품성과 다양성이 행사 전체를 관통하는 언어여야 한다. 관객 수에 대한 압박이 축제 본연의 정체성을 잠식해가고 있다면, 그 지점에서 우리는 마땅히 멈춰 물음을 던져야 한다.

해법은 초청 공연 자체의 폐지가 아니다. 이왕 무대를 만든다면, 축제의 취지와 맥이 닿도록 설계하면 된다. 연극제의 개막식이라면 지역 예술인과의 협업으로 그 첫 장을 열 수 있다. 핵심은 공연이 축제의 '전부'가 아닌, 축제를 더욱 빛나게 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나아가 매년 거액을 들여 외부 가수를 초청하는 방식에만 의존하기보다, 지역의 청년 예술가와 동호회를 꾸준히 발굴하고 육성하여 축제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세우는 장기적 안목이 필요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문화 역량이야말로, 어떤 초청 가수도 대신할 수 없는 진정한 지역 브랜드 자산이 된다.

'누가 왔는가'보다 '무엇을 남겼는가'가 오래 기억된다. 흥행은 하루의 열기로 사그라들지만, 지역의 가치와 문화는 세월을 넘어 쌓인다. 이제 지역 축제는 관객 동원의 숫자 경쟁을 넘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얼마나 깊이 있게 전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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