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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롯 신동 전성시대 — 정동원이 쏘아 올린 작은 공, 거대한 트롯 시장으로

등록일: 2026-03-12


한때 트롯은 중장년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흘러간 세월을 달래고, 지나온 삶을 어루만지는 노래. 그것이 우리가 알던 트롯이었다. 그러나 이제 무대의 중심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서 있다. 이른바 '트롯 신동 전성시대'다. 그 출발점에는 단연 정동원이 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단순한 천재 소년의 등장이 아니다. 세 살에 부모의 이혼을 겪고 마음의 문을 닫은 채 조부모의 품에서 자란 아이. 말없이 웅크린 손자 곁에서 할아버지는 조용히 트롯을 흥얼거렸다. 소년은 그 멜로디를 따라 부르며 조금씩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할아버지는 손수 연습 공간을 마련해 주었고, 악기를 쥐여 주었다. 소년은 악기가 부서지도록, 입술에서 피가 맺히도록 연습을 거듭했다. 그것은 꿈을 향한 열정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키워준 할아버지를 향한 간절한 보답이었다.

당시 폐암 투병 중이던 할아버지를 낫게 해드리고 싶다는 소년의 말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무대에 서는 이유가 명성이나 박수가 아니었다. 오직 한 사람,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미스터트롯 본선이 한창이던 시절, 그토록 사랑하던 할아버지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 소년은 눈물을 삼키며 무대에 올랐고, 할아버지의 애창곡을 불렀다. 그 노래 한 소절 한 소절에는 다 전하지 못한 그리움과 다 채우지 못한 효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객석은 말없이 울었다.

정동원이 쏘아 올린 공은 곧 하늘 높이 번져갔다. 방송 경연 무대는 '어린 트롯 가수'라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고, 무대는 점점 더 젊어졌다. 그 물결 속에서 저마다의 빛깔을 지닌 이름들이 하나둘 세상 앞에 섰다.

전유진은 나이를 잊게 하는 짙은 감성으로 정통 트롯의 맥을 이었다. 그 목소리에는 어딘가 그리운 것들이 담겨 있었고, 중장년층은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다. 오유진은 맑고 단단한 창법으로 또래 세대의 공감을 이끌었고, 김다현은 국악적 색채를 품은 창법으로 전통과 현대를 자연스럽게 연결했다. 어린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구성진 꺾기와 깊은 한의 정서는 듣는 이의 가슴 어딘가를 조용히 두드렸다.

남자 신동으로는 황민호가 있다. 귀여움과 실력을 두루 갖추며 온 가족이 함께 웃고 즐기는 무대를 만들어냈고, 나이를 넘어선 표현력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여성 신동들의 존재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김태연은 폭발적인 성량으로 '천재 소리꾼'이라는 수식어를 당당히 얻었고, 빈예서는 애절하고 여린 감성으로 정통 발라드 트롯의 깊은 결을 더했다. 김유하는 맑은 음색과 안정된 표현력으로 차세대 기대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수연이 있다. 일곱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소녀. 그 뒤로 할머니의 손을 잡고 자랐다. 노래방에서 아버지와 점수 내기를 하며 까르르 웃던 기억, 자신이 노래하는 것을 그토록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눈빛. 그 기억을 가슴 깊이 품고 소녀는 무대에 올랐다. 아버지를 그리는 노래를 부를 때면 어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객석 곳곳에서도 조용히 울음이 번져 나갔다. 할머니와 함께 시장을 걷고, 이웃들에게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그 소녀의 노래에는 아픔을 딛고 피어난 꽃의 향기가 배어 있다. 언젠가 훌륭한 가수가 되어 할머니께 효도하고 싶다는 소녀의 소박한 꿈은, 듣는 이의 마음을 오래도록 따뜻하게 데운다.

이들의 공통점은 '성장 서사'다. 노래 실력만이 아니라 가족의 응원, 눈물의 연습, 좌절과 극복의 이야기가 더해지며 트롯은 한 편의 드라마가 되었다. 관객은 노래를 듣는 동시에 그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본다. 박수를 치다가 어느 순간 눈물을 훔치는 것은, 그 아이들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의 이야기와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트롯 신동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녀이자 손자손녀처럼 느껴진다.

세월은 흘렀고, 그 아이들도 자랐다. 정동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라를 지키는 늠름한 해병대원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던 소년이, 이제는 군복을 입고 또 다른 책임 앞에 당당히 서 있다. 그 모습이 왠지 뭉클하다. 하늘에서 할아버지도 흐뭇하게 내려다보고 계시리라. 전유진 또한 예술대학교에 진학해 학업과 음악을 함께 품으며 한층 성숙한 예술인으로 피어나고 있다. 소녀에서 숙녀로, 그 성장의 과정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노래 한 곡이다.

이 모든 이야기가 결코 먼 곳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거창과 가까운 고장에서, 우리와 같은 햇살 아래 자란 아이들이 만들어낸 역사다. 텔레비전 속 화려한 스타가 아니라, 이웃 마을 골목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처럼 친근하고 따뜻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보자. 거창에서 트롯 신동이 나오지 말란 법이 있는가.

산과 들이 넉넉하고, 맑은 물이 흐르며, 사람의 정이 살아 있는 이 고장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자라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오늘 노래 교실에서, 작은 음악회 무대에서, 학교 강당 한켠에서 수줍게 마이크를 잡는 그 아이가 내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아니, 될 것이다.

트롯은 세대를 넘어 흐른다. 할아버지의 노래가 손자의 꿈이 되고, 아버지의 기억이 딸의 노래가 되듯이. 삶의 기쁨과 슬픔을 고스란히 담아, 오늘도 누군가의 가슴속을 촉촉이 적시며 흐른다. 그리고 그 따뜻한 물줄기는 지금, 우리 거창 곁을 힘차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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