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희 나선거구 예비후보

 그에게는 수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민심을 움직이는 사람, 현장을 바꾸는 해결의 설계사, 말이 아닌 결과로 증명하는 실행가, 막힌 길을 뚫고 판을 읽는 남자, 민원의 종결자, 변화의 기획자, 현실을 재구성하는 해결의 마스터, 불가능을 일정으로 바꾸는 남자, 오늘을 넘어 내일을 준비하는 해결사.

이 모든 별명은 결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지난 12년간 지역 곳곳을 누비며 군민과 함께해 온 의정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따라붙은 이름들이다.

그는 58세의 나이에 제7대 거창군의회 군의원으로 입성해 제8대·제9대 거창군의회 의원을 역임했으며, 제8대,9대 거창군의회 전반기의장을 두 차례 맡아 군민과 의회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그는 직책보다 일을 우선하는 사람이다. 의장이라는 자리보다 현장에서 군민의 목소리를 듣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큰 보람을 느껴왔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홍희 의원이 지나간 자리에는 변화가 남는다”고. 그리고 그가 남긴 업적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경상남도 최초로 도입된 ‘천 원 버스’ 정책이 있다. 농어촌버스 이용자의 대부분이 고령층과 학생이라는 점에 주목한 그는 타 지역 벤치마킹과 5분 자유발언 등을 통해 정책 도입을 이끌어내며 군민들의 교통비 부담 완화에 크게 기여했다.

또한 무상급식 중단 위기 속에서는 아이들의 급식 문제만큼은 정치적 갈등과 분리돼야 한다고 판단해 「친환경 무상급식 등 지원조례 일부개정조례안」 추진에 힘을 보탰다. 해당 조례는 지방자치단체장의 급식 지원 의무를 명확히 하며 거창군 무상급식 정상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학부모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었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지역 농가 보호에도 누구보다 앞장섰다. 미국과의 통상 협상 과정에서 농·축산물 수입 개방 문제가 불거지자 경상남도 최초로 「미국산 농·축산물 수입 개방 전면 철회 촉구 성명서」를 대표 발의해 통과시키며 지역 농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이 밖에도 「맨발 걷기 활성화 지원 조례안」 제정을 통해 주민 건강 증진 기반을 마련했고, 「거창군 계획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통해 폐기물처리시설과 마을 간 이격거리 기준을 강화하는 등 생활 밀착형 정책 추진에도 힘써왔다.

또 북부권 농기계임대사업소 설치, 태풍 피해 사과 수매, 폐교 활용 특성화 고등학교 유치 등 다양한 정책 제안이 실제 행정에 반영되며 군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군민의 삶을 최우선에 두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 의정활동을 이어가겠다”며 “군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오늘도 그는 새벽 첫걸음으로 지역 곳곳을 누비며 군민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