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짧은 후렴 하나가 가슴을 울린다. 어디서 들어도 낯설지 않고, 언제 들어도 뭉클하다. 아리랑은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땅에서 태어난 노래 — 지역 아리랑의 뿌리)

아리랑은 하나의 노래가 아니다. 전국에 걸쳐 60여 종, 3,600여 곡에 이르는 아리랑 계열의 노래가 전해진다. 그 가운데 밀양 아리랑·강원도 아리랑·진도 아리랑이 3대 아리랑으로 꼽힌다.

경상도의 흥을 대표하는 밀양 아리랑은 빠른 장단과 구성진 가락으로 듣는 이의 어깨를 절로 들썩이게 한다. 이 신명 나는 가락은 한규철의 '밀양 머슴 아리랑'으로 이어지며, 서민의 삶과 해학을 버무린 친근한 대중가요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강원도 아리랑은 산골의 삶과 애환을 담아 느리고 구성진 가락으로 깊은 울림을 전한다. 조용필이 현대적으로 불러 전국 대중에게 더욱 친숙해졌다.

동해 바닷바람과 산업 도시 울산의 활기를 고스란히 담은 오은주의 '울산 아리랑'은 힘차고 경쾌한 디스코 리듬으로 또 다른 아리랑의 얼굴을 보여 준다. 노래방에서 빠지지 않는 애창곡이자, 관광버스 안에서 흥을 돋우는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 잡은 이 노래는 아리랑이 얼마나 생활 가까이에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처럼 아리랑은 각 지역의 자연과 생업,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땅의 노래'였다.

(민족의 노래가 되다 — 1926년 나운규의 〈아리랑〉)

아리랑이 온 민족의 가슴으로 파고든 결정적 계기는 1926년이었다. 나운규 감독이 연출하고 주연한 무성영화 〈아리랑〉은 일제강점기의 설움과 저항 의식을 담아 전국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의 주제가로 울려 퍼진 아리랑은 이후 식민지 조선인들이 함께 부르는 저항의 노래, 공동체의 노래가 되었다.

해외 독립운동 현장에서도, 광복의 기쁨 속에서도 아리랑은 언제나 함께였다. 노래 한 곡이 한 민족의 역사를 품은 것이다.

(대중가요로 피어나다 — 광복 이후의 변주)

광복 이후 아리랑은 대중가요 속에서 더욱 다채로운 감정으로 확장되었다. 김상희의 '즐거운 아리랑'은 밝고 경쾌한 리듬으로 아리랑의 '흥'을 살려냈고, 김훈의 '나를 두고 아리랑'은 이별과 그리움을 담아 전통적 정서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슬픔과 기쁨, 이별과 희망을 모두 품으며 아리랑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거듭났다. 노래의 형식은 바뀌어도, 그 안에 흐르는 사람의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 무대로 — BTS와 아리랑의 정신)

2012년, 아리랑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세계적 가치를 공식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제 아리랑은 K-팝의 물결을 타고 세계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그 흐름의 중심에 BTS가 있다. 한(恨)과 희망, 고난과 극복이라는 아리랑의 깊은 정서는 BTS 음악 전반에 녹아 있다. 세계 공연장에서 수만 명의 관객이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오래전 마을 사람들이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하나가 되던 모습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맺으며 — 덕유산 아래서, 새 아리랑을 꿈꾸며)

아리랑은 변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산골 마을의 민요에서 저항의 노래로, 대중가요로, 그리고 세계의 무대로 그 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다시 확인한다. 아리랑은 박물관에 잠든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 속에서 계속 써지고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오늘도 비가 올 듯 말 듯, 구름을 두른 남덕유산이 말없이 서 있다. 저 산자락 어딘가에 우리 고장 사람들의 삶과 한(恨)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문득 Cm 코드 한 음을 짚어 본다. 낮고 묵직한 그 울림 속에서 — 내 고향의 정서와 덕유산의 기상을 담은 '덕유산 아리랑'을 한번 작곡해 볼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리랑은 언제나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다시 시작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