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 각 진영마다 마치 작심한 듯 상대를 향한 독설을 쏟아내고 있지만, 결국 그 말들이 자신에게 되돌아올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잊고 있는 듯하다.

정치에는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권력은 이동하고, 연대는 바뀌며, 오늘의 적이 내일의 협력자가 되는 일은 우리 정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문제는 그 변화 자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언어와 태도다. 지금 우리 정치에서는 건전한 비판은 사라지고 날 선 비난만 횡행하는 듯해 씁쓸함을 더하고 있다.

너무 큰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가 남기 마련이고, 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말이 거칠수록 주목받고, 상대를 깎아내릴수록 자신이 돋보인다고 착각하기 쉽다. 결과만 떼어 놓고 평가하며 맥락과 책임, 대안은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안 없는 평가는 공허하다. 그것은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의 언어라기보다 관중석에서 던지는 훈수에 가깝다.

반면 비판은 다르다. 비판은 때로 불편함을 주지만, 공동체가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비판에는 최소한의 대안이 전제되고, 상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의 무게 또한 정확히 짚는다. 언어는 절제되고, 더 나은 방향을 향한 고민과 질문이 남는다.

정치의 세계를 강호에 비유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강호는 무법천지가 아니다. 오히려 암묵적인 질서와 도가 존재하는 공간이다. 일본 전국시대의 전투 기록을 보면 적을 막다른 곳까지 몰아붙이더라도 완전히 퇴로를 끊지는 않았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것은 단순한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언젠가 자신도 패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 인식과 그때를 대비한 상호 간의 생존 방식이었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상대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언어는 결국 스스로 돌아갈 다리를 불태우는 것과 같다.

강호의 도는 누군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가 만연할 때 무너진다. 그 사람이 가진 성품과 성과는 부정되고, 작은 잘못은 커다란 허물로 부풀려진다. 진영 논리에 지배돼 남의 눈의 티끌만 보고 자기 눈의 들보는 외면하게 된다. 사람과 성과에 대한 평가는 오늘과 내일의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우리는 오직 오늘만 바라보며 판단하려 한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떠올려보자. 재임 당시 그를 향한 비난은 혹독했다. 미숙하다는 평가와 갈등을 키운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는 크게 달라졌다. 이는 모든 정책이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을 다루는 태도와 지역주의를 넘어보려 했던 시도, 그리고 미래를 향한 제도 개혁의 진정성을 뒤늦게나마 재평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구분해야 할 것은 진영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진정성과 태도다. 정치는 수시로 변하지만 정치의 품격만큼은 지켜져야 한다.

말의 책임을 지지 않는 정치, 대안 없이 평가만 남발하는 정치는 결국 국민을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올바른 비판은 공동체의 판단력을 키워주지 결코 적만 만들지는 않는다.

바른 정치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나은 말이다. 비난과 비판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지킬 수 있을 때, 정치는 비로소 싸움이 아닌 선택의 장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 모두가 자신만의 현명한 선택을 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