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닮은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쌍둥이의 목소리는 단순히 닮은 것이 아니다.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두 줄기다. 한국 가요계는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현상을 반세기에 걸쳐 목격해왔다. 1970년대 쌍둥이 자매가 부산에서 상경해 무대에 오르던 시절부터, 오디션 카메라 앞에 선 쌍둥이 형제가 대중의 눈물을 끌어내던 2010년대까지 — 쌍둥이 듀엣의 역사는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와 나란히 흘러왔다.

그들이 노래할 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것은 단순한 화음이 아니다. 같은 날 태어나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골목을 뛰어다니며 쌓아온 세월의 공명(共鳴)이다. 관객은 그 공명 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느낀다. 어쩌면 그것이 쌍둥이 가수에게 대중이 유독 열광해온 이유일 것이다.

원조 쌍둥이 여제 — 바니걸스

토끼를 닮은 눈을 가진 쌍둥이 자매, 고정숙과 고재숙. 부산 출신의 두 사람을 무대로 이끈 것은 딸들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였다. 무작정 상경해 작곡가 신중현을 찾아간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1971년 〈파도〉로 공식 데뷔한 이후, 〈노을〉, 〈보고 싶지도 않은가 봐〉 등 연이은 히트곡으로 70~80년대 가요계를 평정했다. 군 위문공연만 1천 회 이상을 소화하며 '원조 군통령'으로도 불렸다.

바니걸스는 단순한 듀엣이 아니었다. 쌍둥이라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가 되던 시대에, 그들의 싱크로율 높은 무대는 TV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입학 시험장에서 사진 한 장만 내도 된다며 돌려줬다는 일화는 두 사람의 닮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74년에는 박정희 정권의 외래어 금지령으로 잠시 '토끼소녀'라는 이름을 써야 하는 수난도 겪었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는 조용한 인연도 있었다. 언니 고정숙은 음반 작업을 함께하던 색소폰 연주자 우성창과 눈이 맞았다. 경남 거창 출신의 그는 성실하고 과묵한 연주자였는데, 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살피던 고씨 어머니의 눈에도 흡족하게 들어 마침내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다. 무대 위의 화음이 삶의 화음으로 이어진 셈이었다.

1990년 해체 이후 재기 시도가 수차례 있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2016년 언니 고정숙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동생 고재숙은 오랜 침묵 끝에 홀로 무대에 다시 섰다. 2023년, 7년의 침묵을 깨고 신곡을 발표하며 그는 담담히 말했다. "언니와 함께했던 무대가 그립지만, 이제 혼자 걷겠다."

선행의 아이콘, 시련의 형제 — 수와진

이름 그대로 형 '수'와 동생 '진'이 만든 남성 쌍둥이 듀오, 안상수와 안상진. 부산경남상고를 함께 졸업하고 군대까지 동반 입대한 두 형제는 전역 후 전영록의 도움으로 1987년 〈새벽 아침〉으로 데뷔해, 그해 KBS 가요대상 신인상과 MBC 아름다운 노래 대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굵은 목소리와 여린 목소리의 절묘한 하모니가 트레이드마크였고, 한국의 사이먼 앤가펑클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파초〉, 〈바람 부는 거리〉 등 서정적인 히트곡 뒤에는 아버지와 여동생을 잃은 상처, 1989년 동생 안상진이 한강 둔치에서 괴한에게 습격당한 비극, 수차례의 뇌수술, 그리고 간경변과 폐종양의 고통이 있었다. 그 겹겹의 시련 속에서도 두 형제는 30년 가까이 800여 명의 심장병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는 자선 공연을 이어왔다. 2008년 18년 만의 재기 앨범을 낸 이후에도 전국 각지를 돌며 모금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트로트계의 쌍둥이 막내들 — 윙크

언니 강주희는 KBS 공채 18기 개그우먼 출신이다. 개그콘서트 활동 당시 쌍둥이 여동생 강승희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아 선배에게 오해를 샀다는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강주희가 개그콘서트를 떠나며 두 자매는 본격적인 트로트 듀오로 전향해, 〈천생연분〉, 〈부끄부끄〉, 〈얼쑤〉 등의 히트곡을 냈다. 데뷔 초와 달리 각자 원하는 성형을 따로 해 이제는 제법 구분이 된다고 방송에서 털어놓은 것도 화제가 됐다.

웃음에서 노래로 — 이상호와 이상민

개그맨이 가수가 된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쌍둥이 개그맨이 함께 트로트 무대에 서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이상호와 이상민은 2006년 KBS 21기 공채 개그맨으로 함께 데뷔해 쌍둥이라는 특징을 살린 동반 개그로 사랑을 받았다. 개그콘서트의 〈헬스보이〉, 〈풀하우스〉 등 코너에서 뛰어난 신체능력을 앞세운 몸개그로 이름을 알린 두 형제는, 뗄 수 없는 한 쌍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됐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야망은 웃음에서 멈추지 않았다. 2020년 '내일은 미스터트롯'에 동반 출연했으나 예심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포기하지 않고 KBS '트롯전국체전'에 재도전해 마침내 결승까지 진출하며 '개가수(개그맨+가수)'의 대열에 합류했다. 웃음으로 닦아온 무대 위의 호흡이 노래에서도 자연스럽게 살아난 결과였다.

군 복무 시절이 두 형제가 유일하게 떨어져 지냈던 기간이었다고 할 만큼 언제나 함께였던 이들은, 이후 유튜브 채널 '쌍둥이TV'를 개설해 활동 무대를 넓혀갔다. 가르마 방향이 다르다는 것만이 유일한 구별법이라고 알려진 두 사람은, 오늘도 닮은 얼굴로 닮은 웃음을 팔며 — 그리고 이제는 닮은 목소리로 노래도 하며 — 대중 곁에 서 있다.

운명이 나눈 두 목소리 — 허공과 허각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10년 넘게 행사 가수로 생계를 이어가던 쌍둥이 형제. 2010년 함께 참가한 슈퍼스타K2에서 동생 허각은 우승의 영광을 거머쥔 반면, 형 허공은 2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동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묵묵히 지켜보던 허공은 2012년 보이스코리아에 도전해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날씬하면 허공, 아직 안 날씬하면 허각." 그의 자조 섞인 농담 뒤에는 쌍둥이이기에 겪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과 오랜 고독이 담겨 있다. 허각의 조카들조차 누가 아빠인지 구분하지 못했다는 일화는 웃음 속에 복잡한 감정을 남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말했다. "허각의 형이 아닌, 허공으로 서겠다."

쌍둥이 듀엣의 이야기는 결국 '둘이 하나'이면서 동시에 '각자가 둘'이라는 역설의 서사다. 같은 피를 나눴어도 하나는 오디션에서 웃고 하나는 울었으며, 같은 무대에 섰어도 하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하나는 그늘에 머물렀다. 개그에서 출발해 노래로 넘어온 이상호·이상민처럼, 장르와 형식을 가로질러 '함께'라는 방식을 고집하는 쌍둥이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쌍둥이 듀엣은 부부 듀엣이나 일반 혼성 듀엣에 비해 분명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사랑으로 맺어진 부부 사이에도, 오랜 우정으로 뭉친 파트너 사이에도 좁히기 어려운 간극이 있다. 취향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몸이 기억하는 리듬이 다르다. 그러나 쌍둥이는 다르다. 태어난 순간부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생각이 닮고 행동이 닮고, 침묵의 의미조차 서로 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그 감각이 무대 위에서 화음이 되고, 호흡이 되고, 관객의 가슴을 두드리는 울림이 된다. 연습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을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품고 왔다.

목소리는 닮았어도 인생은 달랐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노래할 때만큼은 — 단 두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그 찰나의 화음만큼은 —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소리였다. 그것이 쌍둥이 듀엣이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