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백이 처음 만났을 때, 백은 직장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청은 그런 백에게 손을 내밀어 직장을 구해주고, 다시 세상을 살아갈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은 당연한 것이라 여긴 청은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백을 상사에게 추천했고, 결국 백은 새로운 삶의 기반을 얻게 됐다.

시간이 흐른 뒤 청은 선출직 선거에 출마하게 되었고, 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큰 도움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의 지지, 아니면 적어도 중립만이라도 지켜주기를 바랐다. 그것은 사람의 도리이자 기본적인 신의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백에게서 돌아온 선택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청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상대 후보 편에 서서 머리까지 삭발하며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를 지켜본 청의 마음에는 단순한 실망을 넘어 깊은 배신감마저 밀려왔다.

청은 자신이 도움을 준 사실을 굳이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백의 행동은 그동안의 모든 기억마저 지워버리고 싶게 만들고 있다. 사람 사이의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쌓이고, 또 행동으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청은 사람을 도운 일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상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배신이라는 감정 또한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선택에 흔들리기보다는, 스스로 믿는 가치와 원칙을 끝까지 지켜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