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색소폰 연주자 출신 작곡가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이봉조일 것이다. 그는 작곡가이자 편곡가, 악단 지휘자, 색소폰 연주자로 활동하며 1960~70년대 한국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음악인이었다.
이봉조는 1931년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을 진주에서 보낸 그는 진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음악 전공자가 아니었음에도 테너 색소폰 연주자 엄토미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인 연주법을 익혔고, 대학 졸업 후 서울시청 토목과 공무원 생활을 접고 1961년 전업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봉조악단을 이끌며 미8군 무대를 누빈 그는 재즈와 스윙을 한국적 정서와 접목시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한국의 스탠 게츠'라 불릴 만큼 색소폰 연주로도 명성이 높았다.
이봉조와 가수 현미는 오랜 음악적 동반자였다. 1962년 현미가 부른 '밤안개'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두 사람의 파트너 관계는 한국 가요계의 전설이 되었다. 가수 정훈희와의 인연도 각별했다. 동경 국제가요제, 그리스 가요제, 칠레 가요제 등에 함께 출전해 입상하며 한국 대중음악을 세계 무대에 알렸다. 이 밖에도 최희준, 윤복희, 김추자, 문주란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이봉조의 곡과 편곡을 통해 스타로 거듭났다. 1964년 MBC 전국경음악경연대회 대상에 이어 TBC 전속 악단장으로 활동하며 방송 음악계의 중심을 이끌었다.
1987년 8월 31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지금도 한국 가요사의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뜻깊게도 그의 고향 남해군에서는 이봉조기념사업회와 남해예총 주관으로 매년 '이봉조 배 전국 가요제'와 '전국 색소폰 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전국의 음악 애호가들이 남해군 실내체육관에 모여 이봉조가 남긴 주옥같은 노래들로 경연을 펼치는 이 행사는 이미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색소폰으로 시대를 노래하고 수많은 가수를 스타로 만든 선구자 이봉조, 그의 선율은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다.
https://youtu.be/RKaEUwnxM7s?si=UwW1fIYNGMtSfHDO
정훈희와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