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 설이나 추석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차례상을 준비하고 조상께 예를 올린 뒤 산소를 찾아 성묘하던 모습은 이제 낯선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간소화된 차례, 여행과 휴식 중심의 연휴,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들의 사정까지 생각하면 변화 자체를 탓하기는 어렵다. 시대는 달라졌고 가족의 형태와 생활 방식도 달라졌다. 그러나 편리함과 간소함이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차례를 지내는 방식은 바뀔 수 있고, 제례 음식의 가짓수도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조상을 기억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돌아보는 마음마저 가벼워서는 안 된다. 성묘와 벌초는 단순히 묘를 찾아 풀을 베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집안의 뿌리를 확인하고, 세대와 세대를 잇는 마음의 의식이다. 산소에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잘 정돈된 묘역에는 후손의 손길이 남아 있다. 무성한 잡초를 걷어내고 흙을 고르며 비석을 닦고 잠시 묵념하는 그 시간은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과 수고 위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부모와 조부모, 그 윗대 어른들의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몸으로 배우는 자리다.

벌초 역시 마찬가지다. 더운 날 땀을 흘리며 산소 주변을 정리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번거로운 노동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 함께 벌초를 하면 그 자체가 교육이 된다. 어른들은 고인의 삶과 집안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자녀들은 평소 알지 못했던 자신의 뿌리를 배운다.

저분이 어려운 시기에 가족을 위해 어떤 고생을 하셨다, 이 땅과 이 집안을 위해 얼마나 애쓰셨다는 이야기는 책으로 배우지 못하는 삶의 참된 교육이고 역사다. 요즘은 형식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정성을 잃은 형식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마음은 아무 행동 없이 오래 유지되기 어렵다. 감사도 표현하지 않으면 무뎌지고 가족도 자주 만나지 않으면 멀어진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 또한 마찬가지다.

꼭 거창한 제사를 지내는 것보다 자주 돌보는 것이 상책이다.

형편에 맞게 간소하게 추모하고 명절이나 기일에 가족이 함께 고인을 기억하며 가능하면 산소를 찾아 주변을 돌보는 일만으로 충분히 그 뜻을 이어갈 수 있다. 우리 주변에 웃어른을 공경하고 조상을 정성껏 모시는 가정에서 단단한 가족애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무슨 신비한 복을 받기 때문은 아니다.

어른을 존중하는 집안에서는 자연스럽게 책임과 배려를 배운다.

부모를 공경하는 모습을 보며 자녀도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힌다.

서로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가족의 명예나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쌓인다. 이런 가족에서 자란 자녀는 사회에 나가서도 약속을 지키고 관계를 소중히 하며 어려움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다.

사업과 가정의 번창도 결국 사람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조상을 잘 모신다고 해서 모든 일이 저절로 잘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뿌리를 아는 사람은 쉽게 교만해지지 않고 은혜를 아는 사람은 쉽게 관계를 저버리지 않는다.

겸손과 성실, 책임과 감사는 가정에서도 오래가는 자산이다. 조상을 공경하는 문화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덕목을 다음 세대에 자연스럽게 물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바쁘다, 귀찮다, 누가 하겠지라는 생각이 쌓이면 가족 공동체의 끈은 조금씩 약해진다. 벌초를 할 사람도, 성묘를 제안할 사람도, 집안의 이야기를 기억할 사람마저 없어진다. 결국 조상은 이름 없는 과거가 되고 가족은 필요할 때만 연결되는 관계가 되기 쉽다. 개인의 자유와 삶의 방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자유가 무관심으로 변할 때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는다.

명절은 단지 쉬는 날이 아니다. 살아 있는 가족이 서로 안부를 묻고 떠난 이를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게 삶의 뿌리를 전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이어져 온 사람들이란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날이다.

벌초와 성묘를 앞두고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산소에 풀을 베는 일은 단순히 우리의 무관심을 걷어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조상을 모시는 일은 과거에만 머무는 일이 아니라 오늘의 가정을 바로 세우고 내일의 자손에게 바른 뿌리를 남기는 일이다.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쉽게 쓰러지지 않듯, 조상을 기억하고 웃어른을 공경하는 가정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사업이나 정치에 크게 성공한 인물들의 조상 숭배의 사고는 남다르다. 고로 조상 잘 모신 사람치고 잘못된 사람 없고 말 잘해서 손해 본 사람 없다.

발행인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