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경남도지사 비서실장 정치학박사 최기봉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가 다가온다. 가족과 이웃이 모여 정을 나누는 따뜻한 명절이지만, 올해 추석을 맞는 국민의 마음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장바구니 물가는 부담스럽고, 식당과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매출과 비용 걱정에 하루하루를 버틴다. 청년은 취업과 주거 문제로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고, 농민은 생산비와 판로를 걱정한다. 지방에서는 청년이 빠져나가면서 학교와 상권, 의료와 생활 기반까지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 삶은 이처럼 팍팍한데 정치의 모습은 어떠한가.
국민의 한숨보다 정치권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민생의 절박함보다 갈등과 대립이 앞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때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현실이 됐다.
정치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의 삶을 지키고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것이다. 여야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와 민생, 일자리와 주거, 저출생과 지방소멸처럼 국가의 미래가 걸린 문제 앞에서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장사가 잘되고,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집 걱정을 덜며, 아이들이 노력한 만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회다. 결국 국민이 원하는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다.
그 내일을 위해 가장 먼저 청년을 봐야 한다.
청년들에게 “도전하라”고 말하기 전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좋은 일자리와 안정적인 주거, 창업과 재도전의 기회가 필요하다.
AI와 디지털 전환, 첨단제조, 항공우주·방산, 미래에너지, 스마트농업 등 새로운 산업을 지역의 성장동력으로 만들고 지역 대학과 기업이 함께 인재를 키워야 한다. 청년이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고향을 떠나야 하는 구조를 바꾸지 않고 지방소멸을 막겠다는 것은 공허하다.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는 동시에 미래산업을 키워야 한다. 지역 대학과 기업이 함께 인재를 키우고, 청년이 지역에서 배우고 일하며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청년이 머물고 기업도 필요한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 청년이 떠나지 않고, 기업이 투자하며, 사람이 모이는 지역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지방소멸을 넘어 지역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길이다.
지방소멸은 인구 숫자만 늘린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일자리와 교육·의료, 문화·체육, 교통과 주거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문화와 체육은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경제를 살리는 자원이 될 수 있다. 유소년 스포츠와 생활체육을 활성화하고 전국 규모의 대회와 전지훈련을 유치하면 선수와 가족이 지역을 찾는다. 숙박과 외식, 관광으로 소비가 이어지고, 사람이 모이는 곳에 새로운 일자리도 생긴다.
농촌도 변화해야 한다. AI와 스마트기술을 농업에 접목하고 생산·가공·유통·관광을 연결한다면 농촌은 새로운 미래산업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청년에게 농촌으로 오라고 하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한다.
“농촌에서 무엇을 하면 미래를 만들 수 있는가.”
청년이 스마트농업을 하고, 농산물을 가공하고, 새로운 유통과 관광산업을 만들어 소득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농촌을 단순한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에 도전하는 공간으로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상공인도 지역경제의 핵심이다. 골목의 가게가 문을 닫으면 지역의 소비와 일자리도 함께 줄어든다. 일회성 지원을 넘어 금융비용과 경영 부담을 낮추고 판로를 넓히며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는 등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정치가 답할 차례다.
정치의 성과는 얼마나 큰 목소리를 냈느냐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느냐로 평가받아야 한다.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소상공인의 생계, 농촌의 소득, 지역의 성장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은 이미 충분히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 정치까지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는 국민을 걱정해야 한다.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번 한가위에는 정치가 잠시 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 국민의 삶을 돌아봤으면 한다. 서로 다른 생각은 존중하되, 민생 앞에서는 힘을 모으고 말보다 실천으로 답해야 한다.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국민이 바라는 소원은 거창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 자녀의 미래, 그리고 오늘보다 나은 삶일 것이다.
정치는 바로 그 소박한 바람에 답해야 한다.
국민의 한숨이 희망으로 바뀌고, 청년이 다시 꿈을 꾸며, 지역이 새로운 활력을 찾는 것. 그것이 정치가 만들어야 할 내일이다.
정치가 싸우는 동안 국민의 삶이 멈춰서는 안 된다.
이번 한가위가 국민에게는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함께 웃는 시간이 되고, 우리 사회에는 다시 내일을 이야기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국민의 한숨 앞에서 정치가 답하고, 국민이 자신의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대한민국을 기대한다.